본 소설은 「은하고등학교에서 살아남기」의 초고입니다.
따라서, 「은하고등학교에서 살아남기」의 설정 및 전개 방식에 있어 상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은하고등학교에서 살아남기」를 읽지 않으신 분들에게는 강력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 바랍니다.
현재 연재 중인 소설은 노벨피아에서 열람 가능합니다.
스캐빈저 해적단과의 결전은, 나와 편준범의 1:1 대결 구도가 성립된 시점에서 총 다섯 종류의 패턴으로 나뉜다.
그 중 싸움이 끝난 줄만 알았던 나를 절망으로 몰았던, 마지막 패턴.
닥터퀸의 우주선 들이박기.
이 패턴에 대응하려면 결국 아지트에 진입하기 전에 유루미의 우주선에 침입하는 퀸의 잔당들을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그 잔당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반드시 유루미의 우주선에 남아있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정작 편준범과의 싸움에서 패배해버린다.
크루원들 하나하나가 중요한 전력이다. 누군가가 싸움에서 제외된다면 승패의 천칭은 상대편의 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진다.
편준범과의 대결에서 전원이 전투해야 하지만, 유루미의 우주선을 지키고 있을 사람도 필요한 상황.
답은 금방 도출해낼 수 있었다.
‘내 아바타와의 동기화를 푼다면 내 몸과 아바타, 총 두 개의 시각으로 탐색을 할 수 있을 거야.’
‘뭐야, 그러니까… 너 혼자 두 명분의 역할을 하겠다고?’
선창의 두 개의 몸을 이용하면 된다.
선창의 아바타는 스캐빈저 해적의 아지트에서 잔당들과 전투를.
선창은 유루미의 우주선에서 우주선을 훔치기 위해 침입한 잔당들과 전투를.
극한의 멀티태스킹을 강요하는 내 지시를 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결과적으로 선창은 완벽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냈다.
「쯧, 퇴각하라.」
그 결과, 자신의 계획에 이변이 생겼음을 감지한 퀸은 곧바로 부하들을 순간이동을 통해 물려 도망치게 했다.
순간이동을 사용할 수 있는 녀석들의 특성상, 모든 적들을 단번에 검거할 수 있으리라곤 기대도 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하나뿐이다.
이 빌어먹을 스캐빈저해적의 검거에 성공했다는 것 하나.
“자, 짧게 말하겠다. 편준범, 네 순간이동 능력은 봉인당한 상태이고, 그 어떤 저항도 불가능하다는 것 정도는 너도 알고 있겠지.”
“알다마다.”
“그래, 한 마디로 지금 네 생사여탈권은 우리의 손 안에 있다는 이야기다. 머리에 총알구멍 나고 싶지 않으면 묻는 질문에만 답해라.
“알겠다.”
이전에 상대했던 마그넷 해적과는 다르게 스캐빈저해적, 편준범은 자신의 처지를 빠르게 수긍하고는 내 말에 응했다.
"일단 첫 번째, 네가 지구를 파괴한 우주해적이냐?"
"그런 낙후된 행성따위 모른다. 내게 이득이 되는 행성이 아니라면, 굳이 자원을 소모해서 무리하게 행성을 파괴할 이유따위 없어."
일단 어렴풋이 예상은 했었지만, 이 녀석도 지구를 파괴한 범인은 아니었다.
전쟁을 부추기고 귀중품을 노략하는 스캐빈저 해적의 입장에서는, 굳이 지구 같은 평범한 행성을 파괴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다음, 최시라 연방의원에게 폭탄은 왜 보낸거지?"
“나는 원래부터 전쟁이 일어나면 그곳에 발붙여 각종 물건들을 훔쳐달아나 이득을 보는 족속이거든. 그래서 폭탄을 보내 전쟁을 부추기고 우주선을 훔쳐 전쟁을 가속화하려는 계획이었지."
“그래서, 연방의원 퀸과 협력한거냐?”
“……맞다.”
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편준범은 분노와 비탄이 섞인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젠장, 그 망할 자식이…!! 당당하게 배신하고 동료들까지 뺏어갈 줄이야…!!!”
편준범은 자신이 지니고있던 무언가를, 수갑이 묶인 채인 손으로 있는 힘껏 바닥으로 집어던졌다.
그 무언가는 헥사곤 형태의 칩, 플러그인이었다.
===
[동료의 증표]
자신의 동료들의 수에 따라 자신의 힘과 속도가 증가합니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내 동료다.'
<스캐빈저 해적의 기억>
===
나는 편준범이 내던진 플러그인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다시 질문을 재개했다.
“퀸에 대해서는 더 아는 부분 없나?”
“그 자식과 나는 단순한 비즈니스 관계다. 나는 그저 고용당했을 뿐. 그 이외의 정보 교환은 없었다.”
그 외에 퀸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는 일절 갖고 있지 않았다. 그녀가 칼란드 행성을 노리는 이유, 구상하고 있는 계획, 지니고 있는 약점 등……
궁금한 것은 많았지만, 정작 알아낸 것은 없었다.
“쯧, 됐다. 더 물어볼 건 없어.”
우주방위군이 편준범의 아지트에 도착하고, 수갑에 묶인 녀석을 우주선에 태워 이송했다.
이로서, 칼란드 행성의 전쟁을 일으키려던 악의들 중 하나는 내 손에 의해 제거했다.
“……”
하지만, 나는 아직도 창공을 메운 악의를 기억한다.
칼란드 행성을 불태우기 위해, 타인을 연료 삼아 몇 번이고 나를 죽음으로 몰아세우던 또 하나의 악의를 기억한다.
그 악의가 계속 번롱하는 채로 내버려두어도, 정말 좋은 것일까.
나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연방의원 퀸, 그녀의 악의에 대해서 매우 깊이 고민했다.
***
스캐빈저 해적 편준범을 무사히 체포하고, 우리는 칼란드 작전기지로 돌아왔다.
작전기지로 돌아온 우리는 남동진 내무장관에게 먼저 들렀다. 우리들의 누명에 관한 안건 때문이었다.
남동진 내무장관은 폭탄의 출처를 증거를 은하연방의회에 제출하였고, 폭탄미수에 관한 혐의는 우리가 아닌 스캐빈저 해적인 편준범의 짓임이 밝혀졌다.
덕분에 이제 우리는 범죄자 신분에서 벗어나 갤럭시 캐피탈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되었다.
"누명을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동진 내무장관님."
"아뇨, 해야하는 일을 했을 뿐인걸요. 그리고 저희도 여러분들 덕분에 최시라 의원님을 시해하려 한 범인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내무장관님의 말이 맞다, 형제! 덕분에 자원회사와의 불필요한 싸움도 막아낼 수 있었다! 우리도 고맙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는 우리는 다시 갤럭시 캐피탈로 돌아가기 위해 착륙장에 있는 우리들의 우주선에 발을 들였다.
“못 가.”
“……뭐라고?”
“모래바람이 너무 심해서, 기체에 먼지가 많이 들어가버렸거든. 우주선을 점검해야 하니까, 적어도 35시간동안은 여기에 머물러야 해.”
라고, 유루미가 예상치 못한 소식을 꺼내온 것이다.
***
결국 우리들은 칼란드 행성의 숙소에서 오늘 하루만 머물기로 결정했다.
숙소의 방은 1인실, 3인실로 총 두 개의 방을 배정 받았고, 한 쪽에는 우롄이, 나머지 한 쪽에는 나와 은마루, 선창 셋이 같이 지내기로 했다.
숙소에 머무는 동안은, 각자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은마루의 어릴 적 흑역사나, 선창의 종족이 새의 형태를 띄고 있는 이유, 우롄을 골탕먹일 비밀 계획(이 숙소는 방음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은마루는 모르는 듯 하다) 등……
그렇게 한참을 떠들다보니 어느덧 시간이 꽤나 흐른 채였다.
은마루와 선창은 이야기하다 지쳤는지 침대에 드리누운지 30초만에 기절했고, 우롄 또한 잠에 들었는지 방음이 되지 않는 벽 사이로 새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오직 나만은 여전히 깨어있었는 상태였다.
잠이 제대로 오지 않게 된 것은 이 은하에 오게 된 이후부터다.
지구에 있을 때는 해와 달이 있었기에 명확한 시간구분이 가능했는데, 이 은하에는 딱히 해와 달의 역할을 해줄 무언가가 없어 낮과 밤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내 생체시계는 혼란을 겪어 불면증에 시달리는 현재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아무리 누워있어도 잠에 들 수가 없어서 결국 옷을 다시 갈아입고 숙소를 나왔다.
그러고는, 숙소 근처 벤치에 앉아 황토색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벤치에 앉은 채로, 그 어떤 근심과 고통도 전부 잊은 채로 멍하니.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남동진 내무장관이 길을 거닐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가볍게 손짓을 하며 인사하자, 그는 나를 알아보고는 벤치 쪽으로 천천히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어라, 분명 숙소에 머무르고 계신다는 소식 들었는데… 아직 안 주무시고 계시네요?"
"네, 잠이 안와서요. 내무장관님도 아직 안 주무셨네요."
"아무래도 자원회사와의 전쟁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라서요. 내무장관인 제가 처리해야 할 업무가 산더미랍니다."
그랬다.
칼란드 행성의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비록 스캐빈저 해적의 건은 일단락되었지만, 아직 퀸 의원은 버젓이 활동을 하고있기에 저번 은하연방의회와 비슷한 방해가 지속될 것이다.
"하아… 칼란드의 안건만 은하연방의회에서 제대로 다뤄줬다면 상황이 나아졌을텐데요… 퀸 의원 그 사람은 대체 무슨 원한이 있어서 그러는지 모르겠네요."
"……"
"칼란드 행성의 끝도 머지않았나 보네요. 예전엔 저 하늘도 지금의 색이 아닌 푸른 빛으로 가득차있었는데 말이죠. 하하…"
그는 칼란드 행성의 하늘을 바라보며 허탈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 웃음이 왠지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그의 웃음이 마치…
"아, 무심코 그만 제 푸념을 은하고 크루분 앞에서 털어버렸네요."
"괜찮습니다. 조금 피곤하신 듯하시니 여기 숙소에서 조금 쉬고 계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여기 침대가 꽤나 아늑하더라구요."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럼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나는 피곤해보이는 남동진 내무장관에게 휴식을 권했고, 그는 이에 응해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이거 두고 가셨네.'
나는 숙소 안으로 들어간 그가 벤치에 두고 간 손바닥만한 크기의 작은 노트 하나를 발견했다. 아마 물건을 흘린 것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피곤하셨던 모양이다.
노트를 숙소에 가져다주려던 찰나에 하나의 생각이 내 뇌리를 스쳐갔다.
‘무슨 내용일까?’
이런 생각이 스쳐간 시점에서부터 이미 이 노트를 여는 것은 확정되어있었다.
나는 애써 인간으로서의 도의를 가볍게 억누르고, 노트를 열어 그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곳에 쓰여져있던 내용은, 단순한 비밀 일기장이나 두근두근 연애일지 같은 평범한 것은 아니었다.
"……칼란드 평화사절단?"
***
남동진은 일어나자마자 자신이 졸고있었음을 자각한다.
아직 칼란드의 중요 안건인 자원회사와의 전쟁을 생각하면 졸고 있을 여유가 없는데-
그는 급하게 숙소를 나오던 도중, 벤치에 놓여있는 자신의 노트를 발견했다.
"앗… 두고갔었나?"
그는 혼잣말과 함께 노트를 주우며 지휘 본부로 향했다.
사실, 이 노트는 다른 물건과 헷갈려 실수로 가져온 것이다. 또한, 이 노트는 원래 버려졌어야 할 물건이었다.
노트에 적힌 것은 '칼란드 평화사절단'에 대한 내용이다.
'칼란드 평화사절단'.
자원회사와의 전쟁을 가장 평화적인 수단으로 종전시킬 수 있는 방법, 바로 싸우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다.
즉, 평화사절단을 자원회사로 보내 싸움 대신 협상을 통한 완만한 방식으로 전쟁을 종전시키는 작전이다.
다만, 이 방법의 실질적인 실현 가능성은 제로(0).
기본적으로 자원회사가 점령한 자원채굴 지역은 통신불가 지역인데다가, 자원채굴 구역까지 가는 길은 온통 방어 시설들로 가득차있어 사절단을 꾸려 보내기도 힘들다.
대인지뢰들이 가는 길 곳곳에 배치되어있고, 각종 대포, 우주벌레, 배틀로이드, 전류가 통하는 펜스(Fence) 등. 통행을 방해하는 여러 방해물들이 존재한다.
칼란드의 전쟁 시설을 뚫는 것은 이론상으로 절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아이디어는 거론된지 단 2분만에 폐기되었다.
애초에 그 시설을 뚫을 만한 무력이 있었다면 전쟁은 진즉에 해결되었을 터.
그야말로 기적이 아니고서는, 절대 이루어질리 없는 일.
그래, 그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테니까.
내무장관인 나는, 칼란드 행성을 구하기 위해 열심히 발버둥쳐야한다.
***
"그러니까, 네 녀석 말은."
정예슬이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째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저 전쟁시설을 단신으로 뚫겠다고? 진심이냐?"
자신들의 동포들이 가능한 모든 수를 시도하였음에도 진입하지 못한 극한의 인외마경, 전쟁 시설에 혼자 진입하겠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웬 평범해보이는 학생 한 명이 눈앞에서 지껄였기 때문이다.
정예슬이 눈쌀을 찌푸렸다.
그의 말은 동포들의 노력을 기만하는 행위이자, 칼란드의 군인들의 저력을 얕보는 행위. 정예슬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향한 도발이나 다름없었으므로.
"잘 들어, 애송이. 스캐빈저 해적을 잡았다고 기고만장해졌나본데, 여긴 엄연한 전쟁 구역이다. 너 같은 민간인이 출입하기엔 수없는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라는 얘기지."
"괜찮아요, 이보다 더 한 위험도 겪어봤는데요 뭘. 전쟁시설은 제 능력으로 통과할 수 있습니다. 길만 알려주시죠."
"......허, 좋아. 그 정도로 자신이 있다면 지나가보도록."
정예슬은 머리를 긁적이며 전쟁시설로 가는 길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를 확인한 그가 정예슬을 지나쳐가고,
"지나갈 수 있다면 말이야."
그런 그를 정예슬이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그의 몸은 바닥을 굴렀고, 빠르게 자세를 바로잡았다.
다만, 그가 다리를 털고 일어났을 시점엔 이미 정예슬의 산하 군인들에 의해 순식간에 포위된 상태였다.
어림잡아 20명정도였다.
"지금 우리, 칼란드 행성의 군인들이 머저리로 보이나? '이보다 더 한 위험도 겪어봤는데요'? 일개 고등학생인 네가 전쟁터에서 사지가 찢어지는 경험을 겪어보기라도 했나?"
"……겪어봤는데요."
"하! 그래, 네 녀석이 전쟁시설을 통과할 능력이 있다면, 이 정도 인파는 가볍게 제쳐줘야 되지 않겠나! 우리 칼란드군을 우습게 본 대가는 만만치 않을거다."
"하아… 결국에는 싸워야 하나."
그는 체념한 듯한 한숨과 함께, 주먹을 쥐고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지나가보라고 했죠? 그럼 지나가겠습니다."
그를 향해 날아드는 거칠고 투박한 스트레이트.
일개 학생들을 상대로는 조금 지나친 강도의 공격이지만, 정예슬은 아랑곳하지 않고 공격을 이어갔다.
물론, 죽일 생각은 없다. 단지 세게 명치를 쳐서 기절시킨 뒤 녀석을 포박할 셈이다. 그러니 당연히 총기 같은 무기 없이 단순 주먹질로만 녀석을 제압할 뿐.
정예슬을 필두로 세 명의 군인들이 근거리에서 압박하고, 다른 군인들이 주위를 서서히 에워싸며 피할 공간을 줄인다. 다수의 인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기본적인 공격전술이다.
애초에 일반인과 군인 사이의 기량 차이나, 란체스터 법칙(Lanchester's law) 같은 이론으로 따져봐도 이 싸움의 승패는 사실상 정해져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질 리가 없다.
그렇게 정예슬을 생각했다.
'그럼에도, 포위를 파훼했다고?'
모든 상황이 정예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개개인의 전투력, 절대다수의 인원, 적을 둘러싼 포위 상황.
허나,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그는 단 하나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근거리에서 수십 번에 달하는 무자비한 난타를 전부 피하면서도, 방어가 가장 취약한 부분을 찾아내 각개격파를 행하며 기어코 포위망에서 벗어났다.
"전원! 몸을 써서 막아라!"
정예슬은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총으로 맞춘다면 편하겠지만, 군인으로서 민간인을 해치는 행위는 있어서는 안된다. 최대한 힘을 빼고 진압하는 수 밖에.
그랬기 때문에, 그는 쉽게 피할 수 있었던 것일까.
군인들은 상대가 자신들보다 어린 고등학생인지라 미처 신속하게 제압하지 못했다. 그는 이를 이용해 달려오는 군인들을 향해 과감하게 주먹을 날렸다.
“지나가겠습니다.”
결국 그는 전쟁 시설로 직결되는 입구에 다다랐고, 군인들은 그를 제압하기는 커녕, 머리카락 한 올도 잡지 못했다.
"하, 훈련된 칼란드군의 포위를 손쉽게 뚫어버리다니. 정말 탐나는 인재시군. 우리 군에 들어올 생각은 없나?"
"……그거 스캐빈저 해적한테도 들은 말인데요, 사양하겠습니다."
"큭큭, 그래 좋아. 인정하도록 하지. 그정도 실력이라면 저 삼엄한 전쟁 시설도 통과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드디어 인정해주시는 건가요…"
"하지만 명심해라. 저 앞은 그 우리 군들 중 그 누구도 뚫지 못했다. 설령 네가 우리들조차 우롱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저곳은 위험해. 포격에 스치기만 해도 죽는다."
"……"
"스스로 지옥행을 자처하지마. 네가 무슨 연유 때문에 이 길로 향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희생하는 건 우리들만으로 족하니까."
정예슬은 평소의 장난스러운 표정은 내다버린 채 진지하면서도, 어딘가 슬퍼보이는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아뇨, 저 하나로도 충분합니다."
그는 그런 그녀를 향해 옅은 미소를 띄우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전쟁 시설을 향해. 지옥도를 향해. 그 누구도 돌파하지 못한, 그야말로 인외마경(人外魔境)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곳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
희생이라.
정예슬은 오해하고 있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희생할 만큼의 위인은 되지 못한다.
칼란드 행성의 모두를 구원하기 위해서도, 악을 벌하겠다는 대의를 지니고 있어서도 아니다.
내가 지금 행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다.
수천, 수만 번을 죽어나간 고통의 편린만이라도 그들이 느낄 수 있도록.
여러 악행을 일삼으며 타인을 짓밟고 생명을 모욕하는 끔찍한 행위를 저지할 수 있도록.
나를 영원한 굴레에 옥죄어 놓는 운명을 내 손으로 직접 끊어내고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나를 괴롭혔던 ‘악의’를 단죄하는 것 뿐이다.
“연방의원 퀸. 네 덕분에 200번이나 더 죽을 수 있었어. 정말 고마울 따름이야.”
그리고, 내 앞을 가로막았던 ‘악의’가 뿌린 씨앗을 거둘 뿐이다.
“그 은혜, 깽판으로 갚아주마.”
내 안의 평화를 위해서.
***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자원회사에 들려온 소식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들이 들은 것은 한 소년이 단신으로 셀 수 없는 함정들이 도사리는 전쟁시설을 뚫고 자신들의 영토로 들이닥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
남동진 내무장관이 정예슬 사령관에게 전해들은 소식은 그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그가 들은 것은 은하고 크루의 소년이 불가능하리라 믿었던 ‘칼란드 평화사절단’의 계획을 단신만으로 실행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
그야말로, 난데없이 들이닥친 재해였다.
***
그야말로, 불현듯이 찾아온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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