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고another

은하고another 18화 - Si vis pacem, para bellum

김끼정 2025. 10. 13. 03:23

본 소설은 「은하고등학교에서 살아남기」의 초고입니다.

따라서, 「은하고등학교에서 살아남기」의 설정 및 전개 방식에 있어 상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은하고등학교에서 살아남기」를 읽지 않으신 분들에게는
강력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 바랍니다.

현재 연재 중인 소설은 노벨피아에서 열람 가능합니다.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에도 상해가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한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그에게 있어서는, 육체의 상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배를 뚫려도.
뼈가 으스러져도.
얼굴을 여러 번 찔러도.
사지를 난타당해도.
목을 베여도.

몸에 남아있던 상해는 곧바로 ‘없던 일’이 되어버린다.


문제는 아무리 육체가 이전으로 되돌아간다한들, 정신의 상해는 회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신에서 뇌로 이동하는 죽음의 고통만은, 정신에 그대로 새겨진다.

정신의 상해는 ‘없던 일’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은하에 발을 들인 이후로 이 천 번 가까이 죽어나간 그에게 새겨진 정신의 상해는 얼마인지 가늠할 수 있는가?

적어도 당신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은 이 천 번 가까이 죽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하지만 당신은 이 사실만큼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을 반복하는 그가 제정신일리 없다는 것.



***



전투 용병인 신단아에게 있어 고용주의 의뢰는 절대적이다.

고용주의 의뢰를 불이행함으로써 자신의 신뢰도를 깎아내리는 행위는 그야말로 회생불가에 가까운 행위.

그럼에도, 신단아는 고용주의 의뢰를 완수하지 못했던 적이 한 번 있었다.

오늘 받은 의뢰 또한 곧 그렇게 될 것이라고 신단아는 짐작했다.


그녀가 자원회사 CEO 장대한에게 받은 의뢰는 한 가지.

‘전쟁 시설을 단신으로 뚫고오는 한 소년을 막아 달라’는 의뢰였다.


척-


신단아는 직접 그를 조우하고서는, 정의내렸다.


  ‘완수할 수 없다’.


그렇게 정의 내린 이유는 그저 감이다.
전쟁터를 오가며 여러 사선을 넘어왔던 전투 용병의 감.

그 감은 그녀에게 확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도망쳐.’


눈 앞의 꺼림칙한 인물에게서 도망치라고.



“아, 사람이다.”

“……”


눈 앞의 괴물이 건네오는 말 한 마디.
신단아는 무표정으로 응시할 뿐이었다.


“확실히 수 천 대의 탱크나 징글징글한 우주벌레들과 씨름하는 것보단, 사람과 싸우는 게 더 낫더라구요.”

“……”

“해서, 어서 길을 비켜주었으면 좋겠네요. 저 이래 봬도 바쁜 인간이거든요.”


언뜻 보면 정상적인 언행이라고 할 수 있다. 눈 앞의 저 소년이 지나온 인외마경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전쟁 시설에 배치되어 있을 수많은 대포, 전차, 미사일, 함정, 지뢰, 철망, 우주벌레, 배틀로이드들을 전부 단신으로 뚫어내고는 상처 하나도 없이 서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인간은 아닐 수 밖에 없다.



“자, 비키세요. 좋은 말로 할 때.”

“……”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는다.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라면 죽음조차 감수하는 것.

그것이 전투 용병의 삶이니까.


신단아가 말없이 꺼내든 암살용 단도, 손에 들린 그것을 눈에 새긴 그는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


“미안하지만, 나도 사정이 있는지라 그건 무리겠군.”

“하하하하하. 좋아요, 어디 한 번 해보자고.”


그렇게 죽음을 각오한 자와 죽음이 무뎌진 자의 생사결은 시작된다.


***



“1.”


안타깝게도, 신단아의 실력은 고작 전투 용병 수준이 아니었다.

평생을 전쟁터에서 살아온 자의 노련한 실력은 단 한 합의 승부만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언제나 운명의 여신은 그의 편이다. 비록 그가 원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결국에 그는 승리할 것이다.
그렇게 되어있는 능력이다.


‘정면 승부가 안된다면, 기습이다.’


그가 선택한 방법.
마주하기도 전에 허를 찌른다.

그는 애초부터 바위 뒤에 숨어 [스나이퍼건]의 총신만을 앞으로 내밀고 신단아를 기다렸다.

그리고 신단아가 시야에 포착되었을 즘, 정확히 신단아의 머리와 가늠쇠 정중앙이 맞물리는 그 순간에.


탕-!!


방아쇠를 당겼다.


“……!!”


신단아는 순식간에 날아든 탄환을 단순히 동체시력만으로 회피했다.

이후 그는 신단아에게 적발되어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


“3.”


거진 400번 가량의 죽음 끝에 전쟁시설을 다시 뚫고 재돌입.

신단아를 마주하자마자 곧바로, 그는 아공간 포탈을 열고 사납게 말을 뱉었다.


“데려오느라 무자게 힘들었으니, 죽어 좀!”


그렇게 전쟁시설에서 그를 몇 백 번이고 감염시켜 죽였던 우주벌레, 셀퍼가 아공간 포탈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털바퀴의 형태를 띈 우주벌레, 셀퍼는 적에게 빠른 속도로 굴러가 자신의 내장이 포함된 씨앗을 흩뿌린다.

그 씨앗에는 독성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바닥에도 그 씨앗이 스며들어 밟는 순간 다리부터 녹아내리는 고통을 맛볼 수 있다.


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아공간에서 한꺼번에 소환해낸 셀퍼들은 순식간에 튀어나와 눈앞의 신단아를 향해 굴렀다.


탕-!


그와 동시에, [스나이퍼건]으로 신단아를 쏘아붙인다.


[스나이퍼건]의 탄환을 맞거나, 셀퍼의 독성 씨앗에 노출되기만 해도 매우 치명적인 상황.
이에 신단아는 빠르게 뒤쪽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는 후진하는 신단아를 바라보며 자신이 기세를 잡았다고 생각하며, 그윽한 웃음을 지어내 보였다.


그녀가 거리를 벌린 이유가 자신이 던질 폭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몰랐으므로 일어난 오판이었다.

신단아가 품에서 꺼낸 것은 고용주에게 받은 자원회사의 폭탄이다.

있는 힘껏 내던져진 폭탄은 한순간에 그와 우주벌레들을 불사르며 사지를 단번에 해체시켰다.



***



“4.”

세 번의 전투 끝에, 그는 전투를 포기하고 신단아를 지나쳐가기로 했다.

허나, 기척 감지에 민감한 그녀를 지나쳐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음을 금방 자각한다. 곧바로 실력에 압도당해 사망한다.



“5.”

이후 그는 그녀와의 정면 승부 도중, 아공간에 넣어둔 셀퍼를 이용해 급습하는 작전을 세웠다.

셀퍼의 독을 묻히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곧자로 그의 목 또한 달아나버렸다.



“7.”

그 다음으로는, 플러그인 [분노의 펀치]를 이용해 몸의 중심을 무너뜨리고 셀퍼들을 퍼붓기로 했다.

[분노의 펀치]가 [스나이퍼건]에 장착되지 않는 이상, 신단아의 몸은 전혀 밀려나지 않았다. [스나이퍼건]에 장착하는 경우에는 신단아가 맞아주질 않았다.



“15.”

결국 그는 여태까지 해왔던 대로, 무수한 공격패턴을 외우는 식으로 전투를 진행했다.

확실히 매섭던 신단아의 공격도 외울 정도가 되니 피하는 데에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상황이 불리해지마자, 신단아는 곧바로 품속의 폭탄을 꺼내 동귀어진을 실행했다.

그 어떤 수든 활용해서 신단아를 제압하더라도, 그녀는 폭탄을 통해 확실하게 그를 죽이며 임무를 완수했다.

정면 승부도 정답은 아니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렇게 15번이나 목숨을 허비하고 나서야, 그는 드디어 이 상황에서 벗어날 활로를 찾아냈다.


“그래서 나 막는 데에 얼마 받았는데.”

“……삼백 만 캐피.”

“그 세 배 줄테니까… 제발 꺼져, 이 개새끼야…”


결국 신단아가 그를 죽이려는 이유는 고용주에게 받은 임무, 즉 돈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 돈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

현재 당신의 보유 캐피는
71,893,251C입니다!

===


출처 불명의 자금이 여전히 그에게 주어져 있으므로.


“……”


이이상 죽음을 누적한다면 그는 정말로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여태까지 신단아와의 결전에서 소비한 그의 목숨은 고작 15번이 아니다. 전쟁 시설을 다시 뚫고 오기까지의 5000번의 죽음을 요했다.


이대로라면 목적을 이루기도 전에 찾아올 정신의 마모가 머지않다.


“불만이 있다면 거기에 더 얹어줘도 좋아. 그러니, 제발 좀 꺼져주라…”


그렇기에 그는 협상을 시도한다.
싸우지 않고 지나갈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최상의 결과일테니.



“거절한다.”

“돈이 부족한거라면 더 줄게, 응?”

“난 돈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럼 뭘 원하는데. 뭐든 들어줄게. 내가 할 수 있는거라면.”


그녀의 목적이 돈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그녀를 납득시켜야 할지 그는 감조차 잡지 못했다.

역시나 협상은 실패다- 라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전쟁시설을 단신으로 뚫을 정도의 실력을 지닌 너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런 그에게 있어 신단아의 이어지는 말은 전혀 생각해내지 못한 이야기였음이 틀림없었다.


“나는 칼란드의 평화를 원한다.”

“뭐?”


그녀와 싸울 필요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돈 대신 이걸 잠시 봐줄 수 있겠나?”


그와 그녀의 목적은 모두 ‘평화’를 위한 것이었으니.



***



“나는 분명 ‘막아달라’고 일러두었는데 말이지.”


여태까지 만나왔던 칼란드 주민들의 대척점에 있는, 칼란드 행성 자원회사의 CEO 장대한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까지 우리들의 자원 채굴을 방해할 셈인가.”


사장실에서 업무를 보고있던 장대한의 앞에는, 전투 용병 신단아와 전쟁 시설을 넘어온 미치광이 소년이 서있었으므로.


“아뇨, 장대한 씨. 저는 평화를 위해서 온겁니다.”

“평화?”


그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장대한의 책상으로 던졌다.


“이건 노트인가.”


책상에 던져진 작은 노트를 받아든 장대한은 그대로 페이지를 넘겨 적혀있는 내용을 확인했다.

페이지를 훅훅 넘기던 그는 하나의 키워드가 적혀있는 페이지에서 손을 멈추었다.


“……’칼란드 평화사절단’.”


그가 장대한에게 넘겨준 노트는 남동진의 물건이었다.

남동진이 과로로 인해 숙소에 잠시 묵었을 때, 그는 노트의 내용을 확인하고 몰래 챙겨왔다.


“그 노트에 적힌 ‘칼란드 평화사절단’ 계획이 반려된 이유는 단 하나 뿐. 전쟁 시설을 돌파할 수 없다는 한계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자네가 지금 전쟁 시설을 뚫고 내 앞에 도달한 시점에서, 그 계획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건가.”

“그렇습니다. 이야기가 빨라서 좋네요. 앞서 말씀드린대로, 저희는 평화를 원합니다.”


그는 담담하게 노트에 적혀있던 내용을 토대로 장대한에게 현재 칼란드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지금의 칼란드 행성은 무분별한 자원 채굴로 인해 현재 소멸 위기를 겪고있는 상황입니다.”

“……계속 말해보게.”

“게다가 자원회사의 채굴권이 자원회사에 귀속되어 있는 탓에 칼란드의 주민 연합은 손쓸 새도 없었고, 더군다나 자원회사가 주민 연합과 척을 진 이후로 이 사실을 전할 방법도 사라지고 말았죠.”

“……”

“그래서,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 칼란드에서의 자원 채굴을 그만둬주세요. 전쟁은 원하지 않습니다.”


칼란드 행성의 평화를 위해, 자원 채굴을 멈춰달라고.

평화를 짓밟는 전쟁보다는,
평화를 되찾기 위한 전쟁을 하자고.

그는 장대한에게 제안했다.



“……우리들이 전쟁을 시작한 탓에 칼란드 행성이 소멸위기까지 몰렸었다니. 무지했던 자신을 반성하마.”

“칼란드 행성에서 떠나주시는건가요?”

“아니, 떠나지 않는다.”


장대한은 그렇게 단언하고는 자신의 서류 하나를 집어들어 펜을 들고 무언가를 장대하게 써내려갔다.

그러고는 자신이 써내린 서류를 그대로 그의 손으로 던졌다.


「자원채굴의 대체 제안서」


“다만, 더 이상의 무분별한 자원 채굴보다는 또 다른 분야의 사업을 추진하도록 하겠다. 그 제안서를 칼란드 주민 연합에게 전해주도록.”

“그렇단 얘기는…”

“이제부터 자원회사와 칼란드 주민 연합은 더 이상 대립 관계가 아니다. 자원회사 CEO인 이 내가 선언하겠다.”


그리고, 그의 손에 수많은 이들이 기리던 ‘칼란드의 평화’가 쥐어져 있었다.


“칼란드의 전쟁은, 끝이다.”



***



“날 경호원으로 써먹다니, 건방진 꼬맹이.”


자원회사 CEO 장대한과의 조우를 마친 그의 배후에서 신단아가 팔짱을 낀 채로 말을 뱉었다.


“네 당돌함이 확실히 평범한 수준은 아니라는 건 알겠군.”

“이제 저희끼리의 거래도 끝났고, 약속된 보수도 받으셨으니 이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그와 신단아의 거래 내용은 간단했다.


「자신을 자원회사 CEO인 장대한에게 보내달라.」

이에 대한 보수는, 신단아가 바라던 ‘칼란드의 평화’였다. 보수에 대한 담보(擔保)는 남동진의 노트로 어느정도 입증했다.


“다만, 마지막으로 묻고싶은 게 한 가지 있습니다.”

“……뭐지?”


그럼에도 ‘칼란드의 평화’를 손에 넣은 그에게 있어 아직 해결되지 않은 궁금증이 하나 있었다.


“왜 당신이, 칼란드 행성의 평화를 바란겁니까? 그저 일개 전투 용병일 뿐인 당신이 말이죠.”


신단아는 어째서 그토록 ‘칼란드의 평화’를 바라는가?

수 만금의 캐피도 거절하고 단순히 칼란드의 평화를 바랐던 신단아의 행동은 여전히 그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깨달아버렸거든. 전쟁의 잔혹함을.”

“더욱더 이해가 안가는데요. 애초에 당신은 전투 용병이잖습니까. 전쟁에 익숙하실텐데요?”

“이야기하자면 길어. 하지만 이 말만큼은 꼭 해줘야겠군.”


신단아는 그렇게 말하고서, 자신의 품속에서 폭탄 하나를 꺼내들었다.


“전쟁이 익숙한 사람은 그 누구도 없어. 너도 마찬가지고, 꼬맹이.”


그리고, 품속에서 꺼낸 폭탄은 순식간에 기폭되어 주위에 폭발을 일으켰다.



***



“이건 또 뭐야, 씨발…”


무언가의 사유로 기절한 그는 입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깨어났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그는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자신은 현재 누군가에 의해 납치를 당해 전신을 포박당한 상황이다.

전신을 강한 밧줄로 묶인 채 의자에 앉혀진 상황이었다. 정황 상 그가 납치당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후후, 길을 잃고 떠도는 영혼들을 인도하는 것이 제 사명이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두 번째.
자신을 포박한 그 납치범의 정체는 눈앞에 서있는-


“소개부터 할까요. 저는 이 어두운 저택 안에서 수많은 영혼들을 이끄는, 팬텀해적 올리비아라고 합니다.”



빌어먹을 우주해적의 존재다.